Peter Pan in NeverLand
뭔가 정리가 안 되고 혼란스러운 상태. 뭐냐, 지금. 쌓아둔 것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지도 모른다. 그동안 뒤로뒤로 던져두기만 했던 것들 차마 수면 위로 당기지 못하고 자꾸 바닦에 가라앉히기만 했던 것들이 이제사 다시금 나를 찾아오는 걸 보니, 내가 변환기에 서 있긴 있구나. 여기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수많은 선택이 존재한다. 내가 무엇을 바꿀 것이고, 무엇을 내버려둘 것이고, 무엇을 처리하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은 많은 부분에서 변하겠지. 인간이란 과정일 뿐이고 끝없는 순환의 한 고리일 뿐이라고 스스로 믿어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끝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며 순간순간을 의심하고 생각해야하는 일이 이토록 피곤하게 느껴졌던 적이 전에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붕 떠버린 것 같다.
11월 16일. 별 것아니었지만, 심적으로는 무척 압박이 심했던 구조물진단학회의 발표가 끝났다. 학회의 수준이 높지도, 학술발표회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공부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 자체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논문의 내용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더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 연구의 내용이나 수준을 아직 배우는 입장인 내가 판단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지만, 이런 내가 논문의 내용이 대단치 않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논문 수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논문 내용이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논문 발표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끝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성공적으로 끝났다고도 할 수 있을 정..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무척 좋아했고, 특별히 내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나를 아는 아이들은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것도 다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애와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 단 며칠동안만 짝을 할 수 있었다. 그것과 관련된 (나 혼자만) 재미있는 일화들이 몇 개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지금 하려는 것은 아니고..^^; 암튼, 나는 그 애를 좋아했지만, 나와 오랫동안 짝이었던 여자애는 따로 있었다. 그래, 그 날도 그냥 평범한 겨울날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책상을 새로 배치한 탓에 3분단은 중간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 애는 2분단. 나는 두 칸 떨어진 4분단. 그리고 몇 교시가 지난 쉬는 시간에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그 애와 그 애의 단짝 친구가 자기 자리에..
폼페이우스는 25살에 처음으로 개선식에 거행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25살에 공화정인 로마에서 특례를 인정받고 에스파냐로 떠났다. 한니발은 29살에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들어갔다. 내 나이 29살에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이런 인물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자괴감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내 인생을 한심한 눈으로 돌아보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을 때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나이가 40대가 되어서야 역사에 갑작스레 등장한 카이사르같은 인물도 있지않냐고." 그 말이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다만, 한가지 궁금한 것은.. 카이사르도 29살에는 자신의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그는 후에 이루게 될 꿈을 위해 변함없는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