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그러니까, 나란 인간은 참으로 정리란 것을 못 한다. 연구실의 내 자리는 나의 일반적인 상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책상 위에 흩어져있는 이면지와 필기구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보고난 후에 제자리에 꽂히지 못한 책들과 논문들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다 마신 커피잔과 어느 어느새 재털이로 변한 종이컵은 키보드와 모니터 사이를 자리잡고 있다. 방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것은 없다. 부족한 공간 덕분에 책꽂이를 분양받지 못한 책들은 잠자리의 한 켠에 층층이 고층빌딩을 만들어간다. 이불은 침대인 양 전혀 개켜지지 않은 상태로 언제나 자기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 주변 기기들과 몇 장의 CD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 자신도 잘 정리하지 않는 듯도 하다. 머리는 매일 감긴 하지만, 면..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까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진다. 이런 땐 말하지않아도 어색하지 않을 상대가 필요하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편할 수 있는 그런 상대. 그런 상대가 있다면 주저말고 전화해서 불러내자. 같이 빗속을 걸어도 좋지만, 비오는 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가까운 커피숍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커피숍에 들어가면 창 밖에 보이는 자리가 가장 이상적이다. 전면이 유리로 된 커피숍이면 더욱 좋겠다. 창 밖 풍경이 좋으면 좋을 수록 전면 유리를 한 커피숍의 점수는 올라간다. 손님을 위해 책을 구비한 커피숍이라면 플러스 점수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정도는 평소에 읽고 있던 책이나 가벼..
이 세상에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은 절대 없다. 어떤 관계이던지 나는 적당히 내 모습을 감추고 치장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잡아먹히고 말 정도의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끔은 내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곤 한다.
뚜렷한 인과관계가 보이지않는 영화 링의 뜬금없는 영상처럼 감정들이 일관된 흐름이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사라진다. 깨어진 유리 조각들처럼 감정의 편린들은 여기저기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린다. 최근의 나는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다. 마치 다중인격인양 잠시 다른 생각을 한 것만으로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리고, 아무 여과없이 그런 감정들을 발산하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무엇이 문제인가. 상실감 때문인가? 두려움 때문인가? 외로움 때문인가? 정말 대책없는 녀석이었구나, 난.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녀석. 누군가는 그게 당연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동의하지 않고 그저 이 흐름에 무기력하게 떠내려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