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누구나가 그렇듯 나 역시도 후퇴하기 보다는 전진하길 바라고 그래서 나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위치를 확인할 때마다 내가 서있는 곳은 때때로 나아간 듯 하고, 보통은 제자리인 듯 하고, 심지어 후퇴한 듯도 해서 나의 노력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남들 눈에는 발버둥치며 호들갑떠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내 스스로가 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기에 오늘 하루도 그냥 보내기 싫어서 이렇게 뭐라도 끄적인다. P.S : 이것은 감히 오마쥬. 하지만 이런 형식의 문장은 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멀티플레이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중학교 때는 귀로는 가요를 들으면서 입으로는 그걸 따라부르고 손으로는 수학문제를 풀었더랬다.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수학문제를 풀던 손은 그저 내 공부를 감시하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함이고, 정작 하던 일은 가사를 신경쓰면서 노래하던 것이었던 듯 하다. 덕분에 지금도 노래만 들으면 그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상한 습관만 들었다..-ㅅ- 스스로에 대한 대단한 착각 내지는 망상은 내 삶에서 수많은 폐해들을 만들어냈는데, 이를테면 스스로 멀티플레이어라고 믿어버린 만큼 많은 일을 동시에 벌린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내 일의 우선 순위는 내 주변 사람들의 부탁 등이 높은 순위에 매겨지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기 보다는 내 스스로..
의정부 가능동이라는 곳에 30대 초입의 모씨가 있다. 모씨는 1998년 3월에 청량리에 있는 S대학 모과에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정도로 재수좋게 입학하였었다. 평소에 스스로를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믿어의심치않던 모씨는 대학 입학과 함께 여기저기 동아리를 기웃거렸더랬다. 만화동아리부터 역사연구회, 노래동아리까지 평소에 흥미가 있다고 생각한 모든 곳을 들쑤셨던, 기실 아무 실속없는 시간낭비만 하고는 모씨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동아리는 영화동아리. 이 부분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도 그럴것이 모씨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른 집 담벼락에 유치원생이 그린 낙서 수준보다 딱 세단계 낮은 그림을 즐겨그렸더랬다. 심지어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조차 모씨의 동아리를 만화동아리로..
목요일부터 금요일은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전주에 내려갔다 왔다. 같은 날, 내 친구인 창헌이 아버지의 장례식도 치뤄졌을 것이다. 제목에는 두 번의 장례식이라고 했지만, 결국 내가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의 장례식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94살까지 사셨으니 오래 사신 편이었고, 마지막까지 편안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식은 8남매나 되는 외가댁 식구들의 주변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외가인 삼례에 사시는 분들을 포함해서 각 지역에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서 와주신 덕분에 조문객 수는 1명이 부족한 900명. 아마 방명록에 기입하지 않은 다른 분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거의 1000명에 달하지 않을까 한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간만에 허리에 시큼한 통증을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