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날씨 맑음. 두 번의 장례식, 한 번의 소개팅. 본문

일기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날씨 맑음. 두 번의 장례식, 한 번의 소개팅.

☜피터팬☞ 2009. 3. 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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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부터 금요일은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전주에 내려갔다 왔다.
같은 날, 내 친구인 창헌이 아버지의 장례식도 치뤄졌을 것이다.
제목에는 두 번의 장례식이라고 했지만, 결국 내가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의 장례식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94살까지 사셨으니 오래 사신 편이었고, 마지막까지 편안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식은 8남매나 되는 외가댁 식구들의 주변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외가인 삼례에 사시는 분들을 포함해서 각 지역에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서 와주신 덕분에 조문객 수는 1명이 부족한 900명.
아마 방명록에 기입하지 않은 다른 분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거의 1000명에 달하지 않을까 한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간만에 허리에 시큼한 통증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8남매나 되는 외가의 위력은 단순히 조문객에 그치지 않았다.
멀다는 이유로 자주 가지 않았던 외가댁 사촌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이번 장례식은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 했던 외사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심지어 대학생이 된 오촌 조카까지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촌형의 형수님들까지도.

발인을 앞두고 한 차례 조문객들과 전쟁을 치른 날 밤,
어머니는 다른 어르신들이 주무시는 가운데 깨서서 오래도록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셨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만히 옆에 앉아있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소설에서 왜 장례식을 축제라고 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이해가 된다며 당신의 짧은 소감을 밝히셨다.
그곳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이자, 어머니의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는 앞으로는 이렇게 한자리에서 보기 힘들, 물보다 진한 사촌들과의 끈끈한 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벌써 십수년을 보지 못했던 사촌들이건만 곧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촌끼리도 단지 부모님들이 형제라는 이유로 금새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다.
가족, 같은 혈연이라는 것이 갖는 가장 긍정적인 힘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은가 한다.
우리의 몸 안에 흐르는 피가 닮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금새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은 예정되었던 소개팅 자리였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극명한 대비다.
사촌들 중에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들은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처럼 처음 만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와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너무 심해서 동시에 겪고나면 멀미가 날 정도다.
다른 상황, 다른 분위기, 다른 태도와 거리감.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되어버린 소개팅은 분위기를 업 시켜보려는 나의 마음과는 반대로 끝까지 차분하게만 진행되었다.
분위기를 탈 만한 건덕지를 못 잡았다고 할까.-ㅅ-
그러고보면 나도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능력은 없는 모양이다.ㅋ

누군가는 지구상에서 계속해서 사라져간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만남을 가지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아니더라도 지구상에 생명이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일어날 가장 기본적인 사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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