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토요일인가 금요일인가 TV에 한 피아니스트가 나왔다. 이루마라는 피아니스트였는데, 가을연가와 여름향기의 메인 곡을 이 사람이 작곡하고 연주했다더라. 아, 그리고 예전에 봤던 강아지 똥이라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곡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 이 사람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말..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씨입니다." 호오.. 뉴에이지. 뉴에이지하면 나에게 재미있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아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 무렵에는 그래도 딴에는 꽤 열심히 교회를 나가는 성실한(?) 아이였을 때였는데, 이 당시에는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것이 사탄의 음악이라고 해서, 기독교측에서는 꽤나 싫어했었다. 그 당시에는 뉴에이지 음악이 뭔지 잘 몰랐지만, 아무튼 그런 음악은 나쁜 음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게 가끔 그렇게 말한다. 로맨티스트. 흔히들 로맨티스트는 이상주의적이고 정의감에 차있다고들 생각한다. 맞는 말. 공감하는 부분. 나 역시도. 이상주의자에 정의파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이상이고 정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힘든 부분이 더 많은 모양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게 하는 또 다른 말. 나는 나의 세계에 빠져서 살고 있어.
우연히 동아리에 있던 파페포포 메모리즈 1권을 봤다. 언젠가 동생이 가지고 있어서 읽어본 책이었는데, 그런 책의 특징이 그러하듯.. 다시금 훑어보게 되었다. 그 책을 한참 읽어가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 너무 사랑하는 강아지의 죽음으로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고. 그래서 새로 강아지를 길러도 괜찮을 수 있다는 그런 내용. ... 그거 정말인가? 사랑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그런 말은 나에게는 성립되지 않는 걸.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그 강아지의 죽음이 무척 아프게 다가왔겠지만. 그 죽음의 슬픔은 사랑의 '증거'이지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최종적으로는 죽음으로 인해서 모두와 이별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로 인한 슬픔과 아픔은 분명히 존재하게..
나의 레이스는 지금 얼마만큼 진행된 것일까? 1/3? 1/4? 그것은 레이스가 끝나는 순간까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레이스의 출발선에서는 모두 비슷하게 출발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비슷하지도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내게는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 레이스에서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그 후?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그 이유 또한 한가지는 아닐테지만.. 이제는 눈에 확연히 들어날 정도로 레이스의 거리는 벌어져있다. 그것은 후반 스퍼트를 위한 약간의 릴렉스일 수도 있고, 혹은 이미 실력에 의해 벌어진,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좁힐 수 없는 거리가 되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쯤 어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