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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Pan in NeverLand
2008년 1월 3일 목요일 날씨 맑음. 잃어버린 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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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짬밥을 적당히 먹었을 때의 일이다.
일이등병 때는 당연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상병이 된 후부터는 집에서 책을 한 두권씩 가져와서 읽고 있었다.
정확한 시기를 알고 싶다면 그 당시의 일기를 들춰보면 되겠지만,
지금은 귀찮으니 패스...
아무튼 그렇게 몇권의 책을 읽은 후에 고등학교 동창을 군대에서 만났다.
군대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날 꺼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않았던 데다가
그 녀석과는 꽤 오랫동안 짝도 하면서 친했기 때문에 내 반가움은 이를데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연대 본부에 속했고, 나는 전투 중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란 일요일에 있었던 종교행사 때 뿐이었다.
녀석은 연대 본부였기 때문인지 짬이 한참이나 안 되면서
내가 상병이 되어서야 겨우 할 수 있는 일이었던 독서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 읽고 있는 책을 교환해서 읽게 되었다.
당시 내가 그 친구에게 빌려준 책은 단테의 '신곡'이었고,
내가 빌린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그 후에 우리는 다시 책을 교환한 일이 없었고, 결국 우리는 서로의 책을 다시 받지 못하고 나는 제대해버렸다.
단테의 '신곡'을 꽤 좋아했지만, 나는 책을 교환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당시의 감성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할 수 없는데, 누구를 빌려줬던지 그 친구가 제대한 후에 돌려줬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본 알랭드 보통의 소설에서 베르테르의 사랑을 비꼰 부분을 보고 웃어버렸지만,
20대 초중반의 나는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그래서 극단적이고 서툰 그의 사랑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에 '서툴고' '극단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20대 후반을 지나 30대에 접어든 후에야 내릴 수 있는 평가였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그의 사랑을 단지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진실하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나이의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 그랬기 때문이다.
소설 속 베르테르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나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믿음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나마 유지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죽음도 불사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많은 에너지를 사랑에 쏟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얻기도 했고, 동시에 많은 에너지를 한 번에 소모해버리기도 했다.
그것은 그 때의 내가 사랑에 대한 열정이 지금보다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사랑을 하기 위해 나의 다른 것들을 모두 제쳐놓을 정도로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는... 사랑에 빠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나처럼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힘으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
나에게 사랑은 엄청난 안정과 다른 일들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어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나의 사랑이 충분한 안정궤도에 들어선 이후의 일이다.
시작될 무렵에 느껴지는 그런 간지러움과 두근거림과는 다른 면의 사랑이다.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에 했던 것처럼 많은 에너지를 사랑에 쏟을 자신이 없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내 시야가 너무 넓어져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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